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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페이지 내용 : Ⅰ. 제주해녀문화의 역사 1. 제주해녀의 개요 해녀의 기원은 문헌상에 진수의 삼국지 전 65권 중 『위지동이전』에 “한 겹의 옷만 걸친 채 바다에 뜨고 나오곤 하는데, 그 몸은 중국인과 같다.”는 기록과 “고려 숙종 10년(1105년) 탐라군 구당사로 부임한 윤응균이 해녀들의 나체 진입 및 조선 인조 때 제주 목사가 남녀가 어울려 바다에서 조업을 금한다”는 기록 등 여러 책 에서 찾아 볼 수 있다. 해녀의 발상지는 제주도이다. 해녀의 명칭은 잠녀(潛女) 잠수(潛叟)라고 했다. 해녀는 ・ 나잠어법(裸潛漁法)으로 수심 10m 내외의 얕은 바다에서 소라 문어 해삼 전복 성게 ・ ・ ・ ・ 미역 톳 우뭇가사리 등을 채취하며, 작살로 물고기를 잡기도 한다. ・ ・ ・ 해녀는 우리나라와 일본에만 분포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해녀는 한반도 각 해안과 여러 섬에 흩어져 있지만, 그 대부분이 제주도에 몰려 있다. 해녀들은 바다 속에서 자맥질하여 보통 수심 5m에서 30초쯤 작업하다가 물 위에 뜨곤 하지만, 필요한 경우에는 수심 20m까지 들어가고 2분 이상 물 속에서 견디기도 한다. 물 위에 솟아 올라 “호오이”하면서 한꺼번에 막혔던 숨을 몰아쉬는 소리를 ‘숨비소리’ ‘숨비질소리’ 또는 ‘솜비소리’‘솜비질소리’라 한다. ・ ・ 바닷가에 나간 해녀들은 바위들 사이에서 해녀복으로 갈아입고, 물안경을 낀다. ‘왕눈이’ 라는 물안경은 1950년대에 사용하였고, 그 이전에는 ‘족세눈’이라는 쌍안경을 사용하였다. 해녀들이 부력을 사용하여 가슴에 안고 헤엄치는 ‘테왁’ 밑에는 채취물을 담는 자루 모양의 ‘망시리’ 또는 ‘망사리’‘망아리’라고 하는 것이 달려 있다. 해녀들이 사용하는 기구로는 ・ 전복 등을 캐는 길쭉한 쇠인 ‘빗창’, 해조류를 베는 ‘종게호미’라는 낫과 조개 등을 캐는 쇠 꼬챙이 갈퀴인 ‘갈고리’ 등과 물고기를 쏘아 잡는 ‘소살’이라는 작살이 있다. 해녀들이 떼 지어 물질하는 ‘갓물질’과 15명 내외씩 배를 타고 나가는 ‘뱃물질’이 있다. 그들은 마을 단위로 ‘영등굿’과 ‘잠수굿’으로 풍어와 안전을 빌었다. 해녀들은 돈 벌러 다른 지방이나 외국으로 나가 몇 개월씩 출향생활을 하였다. 19세기 말 부산 울산 등을 시작으로 남해안, 서해안, 강원도를 거쳐 청진에 이르기까지 점점 동해 ・ 안 일대를 누비며 북상하였다. 뿐만 아니라, 객주(客主)의 인솔에 따라 일본 각지와 블라디 보스토크, 요동반도의 다렌(大連), 산둥성(山東省)의 칭다오(靑島)에까지 진출하였다. 이들은 봄에 나가서 가을이면 돌아왔다. ※ 해녀들은 물질하는 기술의 정도에 따라 애기상군/ 하꾼 돌파리 똥군/ 중군 중좀녜 ・ ・ ・ ・ 중좀수/ 상군 상좀녜 큰좀녜 완좀녜/ 대상군으로 구분하였다. ・ ・ ・ 제주해녀문화의 역사 _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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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페이지 내용 : 2. 제주해녀 출향 분포도 울릉도 출어부인 긔념비 규격(㎝) : 57.5~59×165×22~23.5 (전면) 울릉도출어부인 긔념비 (좌면) 객고풍상 애향연금 / 성심성의 영세불망★ 【국역】 객지에 나가 고생하면서도 고향을 사랑하여 돈을 내놓았으니 / 성실한 마음과 성실한 뜻을 영원토록 잊지 않으리 (후면) 고츈죽 홍생낭 홍츈화 리장수 김순하 정유순 홍여순 리계생 장순효 김정낭 홍선숙 홍순자 박애자 홍금선 고임순 박옥낭 홍선정 김윤하 양복녀 림복녀 장부자 장정낭 재향부인(협회) 홍정낭 윤종신 장덕순 고렬죽 임병귀 강행인 양묘출 문복순 리경필 김영순 홍명화 고창범 (후면) 단긔 四二八九년 七월 일 / 협재리대한부인회 근슈 ★客苦風霜 愛鄕捐金 / 誠心誠意 永世不忘을 당시의 음(音)으로 새겨져 있다. 출처: ‘한림읍 역사문화지(제주특별자치도 발간)’ P.248-249 제주해녀들의 울릉도 출향물질을 기념하는 비로서 1956년 7월 한림읍 협재리 대한부인회가 건립한 ‘울릉도 출어 부인 기념비’가 제주시 한림읍 협재리복지회관에 세워져 있다. 6 _ “다른 거 못해도 교육은 시켜야주게!” 교육열정, 제주해녀문화 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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